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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ayer

무릎을 꿇을 때보다 더 높아질 수 없다

 

🔥가장 높아지는 때

사실 이러한 불신앙의 죄를 범한 사람들은
주님에게서 주님을 흠모하거나 믿을 만한
아름다움을 발견하지 못한 이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진정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경배하기를 원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서
“스스로 분발하여 주를 붙잡는 자”(사 64:7)를
찾아보지 못하실 때에 얼마나 이상히 여기실까?

생활 속에서 기도하지 않는 그리스도인보다
더 이상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 시대는 무엇인가를 예고하는 중대한 시대이다.
사실 이 시대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영(간구의 영)을
모든 육체에게 부어주시겠다고 약속하신(욜 2:28)
‘말세’라는 증거가 많다.

그러나 자칭 그리스도인이라 공언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간구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 주변의 많은 교회들이
기도회를 갖지 않을 뿐만 아니라
때로는 몰염치하게도 그런 모임을 비난하며
심지어는 조롱하기까지 한다.

영국 교회는 예배와 기도의 중요성을 깨달아,
목회자들에게 매일 아침저녁으로 교회에서
기도문을 낭독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종종 텅 빈 교회에서
기도문을 읽고 있는 게 현실이 아닌가?

더욱이 기도문 낭송을 급히 해치움으로써
진정한 예배를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지는 않은가?

그에 따라 공중기도 역시 필연적으로 막연하고
불명확해지고 있지는 않은가?

구식의 주간(weekly)기도회를 유지하고 있는
교회들은 어떠한가? ‘주간’(weekly)이라는 표현보다는
‘무기력한’(weakly)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지 않을까?

스펄전(C. H. Spurgeon)은
매주 월요일 밤에 적어도 1천2백여 명이 참석하는
기도회를 인도하는 기쁨을 누린 설교자이다.

그리스도인이여!
정녕 기도의 능력을 믿기를 중단한 것인가?
당신이 다니고 있는 교회가 여전히
주간기도회를 유지하고 있다고 해도,
교인 대다수가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현실이 아닌가?

아니, 그런 모임에 참석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이
명백한 사실이 아닌가?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이것이 누구의 잘못일까?

“오직 기도회밖에 없다!”

사람들은 종종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이런 언사(言辭)를 얼마나 자주 들었던가?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사람 중에
기도회를 진정으로 즐거워하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기도회는 기쁨인가 아니면 의무인가?

이렇게 많은 질문을 퍼부어대는 나를,
교회의 안타까운 결점과 위태로운 약점을 지적하는 나를
용서하기 바란다.

비판하려는 게 아니다.
정죄하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런 일은 다른 사람이나 하라고 내버려두겠다.

나의 간절한 열망은,
모든 그리스도인을 분발시켜
전에 없이 하나님을 견고히 붙잡도록 하는 것이다.

나는 모든 그리스도인을 격려하고,
그들에게 용기를 북돋아주기를 소망한다.

우리는 무릎을 꿇을 때보다 더 높아질 수 없다.

이것이 비판인가?
누가 감히 남을 비판할 수 있단 말인가?

우리 각자가 지난 세월을 돌이켜보며
기도하지 않고 지내왔다는 것을 기억할 때,
우리의 입술에서는 비판하는 말들이 사라질 것이다.

-무릎 꿇는 그리스도인, 무명의 그리스도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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