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결 방법을 찾아서
기도로써 차분해지면 비로소 구체적인 기도로
문제 해결 방법을 찾기 시작한다.
문제가 다가올 때 강력한 한 방은 ‘왜 생기지
말아야 할 문제가 생겼냐?’라는 질문을 하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문제를 풀어가는 내내
‘하지 말아야 할 고생을 하고 있다’라는
마음에 시달리며, 빨리 정리할 방법이나
포기를 생각한다.
이는 사실상 문제의 실체에 접근도 못 한 것이다.
‘생고생하고 있다’라는 마음으로는
신중하고 정성스럽게 문제 해결에 접근할 수 없다.
어쩌다 문제를 넘길 수는 있겠지만,
혹시 시험이라면 그 앞에서 우리는
이길 수 없다는 연약함을 노출한 게 된다.
결국 문제에서 파생된 여러 문제에 시달리다
연약함으로 끝난다.
그러나 기도로써 마음이 차분해지면,
그런 파생된 문제들이 정리되고,
단순하게 진짜 문제만 남는다.
그러면 시달림 없이 핵심 문제를 위해
간절하고 집중력 있게 기도하며 나갈 수 있다.
어려운 중에도 믿음으로 기도하며
문제에 대응하는 즐거움이 있다.
예전 같으면 힘들어서 들지 못하는 운동기구를
근력을 길러서 쉽게 들 수 있을 때와 같은
여유로움과 즐거움이 생긴다.
이는 내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경쾌함이다.
사실상 문제해결력은 그 근력에 있다.
늘 중도에 포기해서 문제만 남았었는데,
낙담하지 않고 남 탓하지 않으며
믿음으로 끝까지 나아가면 문제를 해결하시는
예수님을 만날 수 있다.
방법이 없는 것 같을 때,
‘예수님에게는 방법이 있을 것’이라고 믿고
움직이는 즐거움, 방법이 없는 것 같은
막막함이 나를 짜증 나게 할 수 없다는 여유로움,
예전 같으면 시달리고 낙담했을 문제가
이제는 그렇지 않은 것에서 오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
더불어 문제가 잘 해결되지 않았을 때 오는
후폭풍에 대한 두려움에도 담담해진다.
고통스러운 결과가 닥쳤을 때 겪는
낭패스러움이 있다.
모두가 내게 조용히 책임을 묻는 것 같은 때
말이다. 뭐라고 딱히 변명하기도 쉽지 않다.
아무도 따지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냥 판단하고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정말 괴롭다.
하지만 그때도 담담할 수 있다.
기도로써 마음이 차분해지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지혜를 얻을 수 있다.
차분함이 없다면 문제에 대응하지 못해
사람들의 판단으로 끝나고 만다.
그러나 기도하고 차분한 마음이 들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설득이나 설명 없이도 얼마든지 상황과
사람들의 판단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진실이 이기기 때문이다.
상황에서 나오는 그럴듯한 해석,
주로 스스로 억울해하는 사람이 이기고,
책임을 맡았다가 인격의 손상을 입는
사람이 지는 것과 같은 익숙한 방식
아니고 말이다.
모두가 더욱 진실하게 문제를 바라보고
생각할 수 있게 된다.
기도한 사람의 말이 통했다기보다는
예수님이 주시는 진실이 공동체에
임하는 것이다.
사실 서로 신뢰한다면, 어떤 일이 생기든
위로할 것이다.
하지만 일상에서조차 우리는
서로를 온전히 신뢰하지 못한다.
가족이라도 의견 차이에서 오는 거리감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다 문제가 발생하면,
그 신뢰의 틈이 벌어진다.
사소한 일에도 방어적으로 움직인다.
기도하고 담담하게 대응하라는 건
신뢰가 깨지고 자기 치부를 드러내기 부끄러워도
계속 정직하라는 게 아니다.
기도로 담담하게 나아가면 신뢰가 약해지고
서로 판단하는 분위기를 새롭게 할 수 있다는 거다.
문제가 없을 수는 없다.
그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가 중요하다.
(인스타 글자 수 제한으로 생략된 부분이 있습니다.)
-반드시 응답받는 구체적인 기도, 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