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하면서 셀 그룹을 만들고 리더를 세우면
때때로 이런 불만의 소리를 듣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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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우리 셀에는 너무 힘든 사람만 있어요.
다른 셀에는 좋은 사람들도 많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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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를 맡은 한 청년이 같은 고민으로 나를 찾아왔다.
나는 천천히 이야기를 들어준 후 ‘아둘람 공동체’
이야기를 풀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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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은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자신도 다윗과 같이 리더의 사명을 감당하리라
다짐하고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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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아둘람 공동체의 고백은 많은 성도들에게
나누었던 은혜이자 나눌 때마다 내게도 깊은 깨달음과
도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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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아프리카 선교사 사역을 하며
리더를 세울 때에도, 또 목회 현장에서도 적용하여
큰 교훈을 얻은 말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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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둘람 굴은 다윗이 사울을 피해 도망 다니다가
머물렀던 굴의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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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다윗이 아둘람 굴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다양한 사람들이 거기에 모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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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22장에 보면 환난 당한 자, 빚진 자,
마음이 원통한 자 등 여러 사연의 사람들이
무려 400명 가까이 모여들었다고 한다(삼상 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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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원통한 자, 스트레스가 많고 연약한 자,
소외되고 상처받은 자 등 저마다 다른 사연을 가지고
모인 40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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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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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부르셨으면
그가 왕이 될 때까지 그를 든든하게 지켜줄 지원군,
어려움을 함께 극복하기에 도움이 될 만한 사람들을
붙여주셔도 모자라는 판에 도리어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
사람들만 가득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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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난 재력가나 권력자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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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성도만 마음이 달라도 이렇게 신경이 쓰이는데
다윗은 무려 4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일일이 알아주고
품어주고 이끌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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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이지 말로 표현 못할 인내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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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여기서 반전이 일어난다. 다윗에게 붙여주신
오합지졸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한 명 한 명
다듬어지면서 결국에는 훗날 다윗에게 충성을 다하는
충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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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인내의 시간은 다윗이 왕이 되기 위해
지녀야 할 이해심과 겸손함과 너그러움이 길러지는
시간으로, 다윗이 왕이 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주님의 놀라운 계획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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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은 알래스카에서 목회할 때 어떤 집사님이 내게
상담을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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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날따라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몸살 기운처럼 오한이 나고 몸에 힘이 없었다.
그렇지만 애써 기운을 차리고 상담을 했고,
최대한 아픈 티를 내지 않으려고 열심히 경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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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사님은 놀랍게도 내게 말할 시간도 주지 않고
꼬박 4시간이나 본인 이야기를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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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4시간 내내 말을 쏟아내더니
“이제 됐어요. 속이 다 후련하네요” 하고
기도를 받고 돌아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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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인 내가 뭔가 명쾌한 해답을 드리거나
방향을 제시한 것도 아닌데, 모든 것이 해결되었다고
하셔서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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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아둘람 공동체에 있었던 다윗의 마음도
이렇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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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원통한 사람, 상처받은 사람들에게는
말을 들어주는 것부터가 위로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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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을 통해 리더 다윗의 마음이 내게도 부어지니
붙여주신 한 사람 한 사람을 더 많이 품어주고,
그의 말을 들어주고 이해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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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윗과 아둘람 공동체의 말씀을
잠잠히 묵상하며 큰 깨달음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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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내게 힘이 되고 마음이 잘 맞는
사람을 붙여주시기도 하지만, 때때로 내가 감당하기에
버거운 사람을 붙여주시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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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낙심하지 않을 이유는
바로 아둘람 공동체의 교훈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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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이 아둘람 굴에서 그들을 양육시키고
함께 성장해 나가면서 변화되어가는
‘축복받는 교회의 모형’을 완성한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큰 그림을 완성시킬 원석들이기 때문이다.
(글자 수 제한으로 생략된 부분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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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DNA, 최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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